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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 이야기39

벨칸토 오페라의 3대 거장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 도니체티는 빈첸초 벨리니, 조아키노 로시니와 함께 19세기 전반 벨칸토 오페라를 주도하였습니다. 오늘은 벨칸토 오페라의 3대 거장이라 불리는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음악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니체티는 1797년 베르가모에서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 전당포의 관리인이며 도니체티는 세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그러나 도니체티는 베르가모를 대표하는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죠반니 시모네 마이르에게서 음악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볼로냐 음악원에서 로시니의 후배이며 처음에는 로시니의 ㅣ모방에 그치고 있었으나 로시니가 오페라 창작의 붓을 놓은 뒤부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의향에 반하여 음악가를 지망하였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 군에 입대하였고 군무의.. 2022. 9. 6.
벨칸토 낭만주의의 빛나는 꽃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1792~1868) 로시니의 오페라는 재미있는 줄거리와 달콤한 멜로디, 탁월한 무대 감각, 경제적인 짜임새, 뛰어난 관현악법으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벨칸토 낭만주의의 빛나는 꽃으로 불리는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의 음악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세기 들어 이탈리아 오페라는 '로시니'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서 부파 오페라가 다시 부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18세기 말까지 오페라의 중심은 단연 이탈리아의 부파 오페라였지만 19세기 초 다시 오래전 오페라인 세리아가 중심 장르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전통과 근대의 부침 속에서 이탈리아 오페라는 모든 영역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하게 됩니다. 이 변화에 앞장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불세출의 오페라 스타가 바로 로시니였습니다. 로시니는.. 2022. 9. 5.
그랜드 오페라의 거장 자코모 마이어베어(1791~1864) 독일의 작곡가인 마이어베어는 독일에서 배운 치밀한 작곡기법과 이탈리아식 선율, 프랑스식 취미를 절충해 이를 호화로운 의상과 장치로 더욱 효과적으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그랜드 오페라의 거장 자코모 마이어베어의 일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서양의 원죄와도 같은 반유대 정서는 어릴 적부터 될 성 부른 음악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많은 유망주들에게 자신들의 '유대계' 이름을 포기하도록 종용했습니다. 마이어베어는 성과 이름을 하나로 합쳐 '아이어베어'로 개명했는데 그러는 편이 유대계 냄새가 훨씬 덜했습니다. 자신이 새롭게 추가한 '야콥'이란 이름은 이탈리아식으로 '자코모'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 재능을 일찍 펼쳤고 7살 때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음악계에 데뷔해 천재성을.. 2022. 9. 4.
낭만파의 선구자 카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 베버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음악 풍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의 독일 오페라를 출범시킨 독일의 음악의 영웅입니다. 오늘은 낭만파의 선구자인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삶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베버는 음악 및 연극에 종사하는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프란트 안톤은 음악가이자 조그만 유랑극단의 경영자였고 어머니 게노 베파는 가수였습니다. 베버는 병약한 아이로 태어날 때부터 좌골에 이상이 있었고 이 때문에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어린 베버에게는 놀라운 음악적 재능이 있었습니다. 베버의 아버지는 그런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는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극단이 공연을 위해 이동할 때마다 자식을 가르칠 선생을 찾았는데 마침내 잘츠부르크에서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인 미하엘 하이든을 ..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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