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니체티는 빈첸초 벨리니, 조아키노 로시니와 함께 19세기 전반 벨칸토 오페라를 주도하였습니다. 오늘은 벨칸토 오페라의 3대 거장이라 불리는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음악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니체티는 1797년 베르가모에서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 전당포의 관리인이며 도니체티는 세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그러나 도니체티는 베르가모를 대표하는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죠반니 시모네 마이르에게서 음악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볼로냐 음악원에서 로시니의 후배이며 처음에는 로시니의 ㅣ모방에 그치고 있었으나 로시니가 오페라 창작의 붓을 놓은 뒤부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의향에 반하여 음악가를 지망하였기 때문에 생활을 위해 군에 입대하였고 군무의 틈을 타 오페라 작곡에 힘썼습니다. 1823년 25세로 제대, 오페라 작곡가로서 입신하여 이탈리아 각지에서 해마다 새 작품을 발표하여 점차 지위를 굳혔습니다. 로시니 이상으로 속필이며 로시니가 <세비야의 이발사>를 쓰는데 13일간이나 걸렸다니 정말 게으름뱅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1830년대에 들어서 기법은 원숙하여 오페라 부파로는 <사랑의 묘약>, <연대의 딸>, <돈 파스콸레>등을 내놓았고 오페라 세리아로는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등을 남겼습니다. 파리에서는 시내의 극장 네 곳이 동시에 도니체티의 작품이 상연되는 등 인기몰이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1845년 대뇌 척수 매독을 진단받으면서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1847년에 이르면서 사실상 반신불수 상태가 됩니다.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가 결국 고향 베르가모로 실려온 도니체티는 1848년 4월 8일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사망 직후 베르가모의 공동묘지에 묻힌 도니체티의 유해는 사후 27년이 지난 1875년 베르가모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으로 이장되어 안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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