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악파의 작곡가로 대위법적 수법으로 미사곡과 세속적인 다성 가곡에 뛰어난 작품을 남긴 하인리히 이자크는 <코랄리스 콘스탄티누스>, <인스브루크여 안녕> 등이 유명합니다. 오늘은 르네상스 시대 하인리히 이자크의 음악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자크는 르네상스 음악의 미켈란젤로라 불리며 15세기 궁정 음악계를 주름잡는 플랑드르악파의 대표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의 고급 궁중음악을 대표하는 인스브루크 궁전,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 궁전, 신성 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궁정에서 봉직했습니다.
무엇보다 서양 음악사에서 이자크의 음악적 업적은 일개 지역 음악에 불과했던 플랑드르 악파의 양식을 독일어권 지역에 처음으로 전파한 주요 작곡가라는데 있습니다. 안지크의 활약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중심 음악계가 플랑드르 음악을 수용함으로써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보다 국제적인 성격의 미사곡, 모테트, 샹송, 플로톨라, 리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꽃피웠습니다.
이자크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태어난 것 이외에 어린 시절에 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젊을 때부터 이탈리아에 진출하여 페라라, 피렌체 등에서 활략했고 특히 피렌체의 메디치 가의 로렌초의 궁정에서 일하면서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쌓았습니다.
1492년 로렌초가 사망하자 이자크는 피렌체를 떠나 1497년에는 비엔나의 막시밀리안 1세 궁정에서 작곡가로 일하면서 자유롭게 여행하였습니다. 여행을 통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그리고 플랑드르 양식을 수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다른 작곡가들보다 국제적인 성격의 미사곡, 모테트, 샹송, 플로톨라, 리트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플랑드르의 폴리포니서법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이탈리아적인 유려한 선율, 명확한 화성감, 독일풍의 로만적 표현 등 코즈모폴리턴적 작풍이 특징입니다. 이자크는 콘스탄츠 대성당으로부터 위촉받아서 <콘스탄츠 성가집> 3권, 36권의 연작 미사곡, 13곡의 크레도, 50곡 이상의 모테트, 35곡 정도의 샹송과 네덜란드어 노래, 테노르 리트 등 실로 당시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대표적 곡집인 <코랄리스 콘스탄티누스>는 1508년 콘스탄틴 대성당으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입니다. 이것은 1년 동안의 주일, 주요 축일을 위한 미사 고유문 및 약간의 통상문을 2~6성으로 작곡한 방대한 곡집으로 이자크의 사후 그의 제자 젠플이 미완성 부분을 보충하였습니다. 젠플의 사후 1500~1550년에 걸쳐 3권의 곡집이 뉘른베르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자크의 <미사 카르미눔>도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각종 독일 세속 가곡을 여러 부분에서 정선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세속 음악 가운데는 20여 곡이 독일어 리트인데 모두가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자크가 작곡한 음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독일어 가사로 된 리트 <인스부르크여, 나는 너를 떠나야 하네>입니다. 이 곡에서 흘러나오는 주선율을 이자크가 작곡한 것인지 아니면 이자크가 다른 곡에서 차용한 선율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 루터교 코랄의 대표작품인 <오 세상이여, 나는 너를 떠나야 하네>가 되었고 바흐의 코랄 작품들이나 브람스가 작곡한 <오르간을 위한 코랄 전주곡>의 기초가 되었으니 당대 이자크의 음악의 뛰어난 선진성은 후대 음악가들이 인정해준 셈이 되었습니다. 이자크의 샹송은 1501년 페투루치 간행의 <오테카톤>에 5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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