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유럽 음악을 주도했던 플랑드르악파의 거장이자 15세기 중후반의 가장 중요한 음악가 중 한 사람인 귀욤 뒤파이는 현재는 작곡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당대에는 훌륭한 가수이자 음악교육자였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기욤 뒤파이의 삶과 음악에 대행 알아보겠습니다.
15세기 부르고뉴는 경제적 번영과 문화가 꽃피는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습니다. 중세 푸 반 왕권과 영토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으로 화염에 휩싸였던 유럽에서 평화와 오아시스와도 같은 부르고뉴의 번영은 유럽 음악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연대기 작가는 다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부르고뉴 왕국의 백성은 그들이 누려온 오랜 평화와 그들은 다스리던 영주들의 자비심으로 대단히 윤택한 삶을 누렸다. 영주들은 백성에게 적은 양의 세금만 부과했을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소비는 사치스러웠고 의복은 화려했다. 연희와 축제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성대하고 호사스러웠다."
오랜 번영과 문화의 꽃을 피웠던 평화로운 시대에 사람들은 예술과 문화의 융성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다양한 예술과 문화행사를 주관하던 브뤼셀 궁정문화가 있었습니다. 브뤼셀 본궁에서는 궁전을 과시하기 위해 건축물을 세우고 궁정악단을 조직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향후 10년 동안 모든 유럽 궁정음악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15세기 르네상스 궁정음악을 대표했던 브루고뉴 공국을 위해 일했던 가장 유명한 음악 거장은 1400년 즈음 캉브레에서 태어난 기욤 뒤파이였습니다. 뒤파이는 1409년에 캉브레 대성당의 성가대원으로 음악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고향 헤네가 우에서 성악 훈련을 받고는 일찍부터 리미니 궁정에서 일하다가 로마로 가서 교황 성 마르틴 5세의 성가대 단원이 되었습니다.
뒤파이는 142-년 무렵에 이탈리아 리미니의 말라테스타 가에서 봉직했습니다. 그 후 잠시 프랑스로 되돌아갔습니다.
1428년에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자 로마로 피신해 1433년까지 머물렀으며 1433년부터 1435년까지 북서 이탈리아와 서부 스위스를 통치하던 사보이 공작 밑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1431년 새 교황 선출 즈음에 5성 모테트를 초연하면서 갑자기 작곡가로 등장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뒤파이는 미사와 모테트 등 종교 음악뿐 아니라 수많은 사랑 노래를 썼습니다. 그의 세속 노래는 <안녕, 내 사랑>, <불쌍한 사람> 등 좌절된 사랑을 슬퍼하는 내용이 많고 새해의 노래, 5월의 노래 등 행사 노래도 있습니다. 뒤파이 시대의 세속 노래를 샹송이라 불렀는데 이 명칭은 오늘날 프랑승 샹송의 기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1434년 사보이 궁정 결혼 파티에서 부르고뉴 공의 수행원으로 온 뱅슈아와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르네상스 궁정 음악가들은 직업적으로 이중생활을 했던 일종의 투잡 인생이었습니다. 궁정 음악가들에게 작곡은 차라리 부업에 가까웠고 본업은 궁정 일을 보는 비서나 사제, 관청 서기, 심지어는 외교 고나 업무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음악가는 요즘으로 치면 프리랜서 격에 해당하는 떠돌이 직업으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당시 궁정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유명 음악가들의 생애를 보면 이들의 고충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뒤파이도 그런 활동적인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궁정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야영을 했고 그렇지 않으면 궁정악단과 함께 연주여행을 떠났습니다. 음악가는 불안정한 방랑자였습니다.
이 시대에는 아직 4성으로 구성된 초기 다성음악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작곡가로서 인정받은 뒤파이는 부르고뉴로 귀환해 수많은 미사곡을 연이어 작곡했습니다. 뒤파이는 1420~1447년 사이에 24편의 모테트를 작곡했는데 그중 13편은 동일 리듬의 곡입니다. 총 13곡이 실려 있는 이 음반에는 현존하는 모든 원전을 바탕으로 녹음한 파울 반 네벨의 엄격한 연구 결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특히 성악 부분을 대신해 원전 악기를 사용한 부분을 듣는다면 먼 옛날 이 음악들이 연주되었던 축제나 성대한 행사의 분위기를 느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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