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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 이야기

녹턴의 창시자 존 필드(1782~1837)

by 어니스트- 2022.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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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야상곡)은 원래 존 필드가 창시한 것인데 그가 1832년부터 33년까지 파리에 체재 중 쇼팽에게 그 영향을 주었고 쇼팽에 의해 전혀 새로운 형식을 낳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녹턴의 창시자인 존 필드의 음악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서양 음악사에서 '녹턴'하면 자연스럽게 쇼팽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녹턴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피아노 양식이고 뭔가 스산한 가을밤에 잘 어울리는 낭만과 서정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음악의 시 같은 느낌이 드는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하지만 녹턴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유명한 음악가 존 필드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고 심지어는 필드가 1832년에 파리에 머무르면서 쇼팽에게 영향을 준 음악입니다. 한마디로 존 필드와 쇼팽의 관계는 가을밤의 총총한 별만큼이나 지울 수 없는 진한 숙명과도 같은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존 필드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알려진 유명한 음악가들이 그렇듯 그도 10세 때 이미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고 1792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웨일스의 왕자가 런던에서 주최한 큰 콘서트에 데뷔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당시 피아노의 대가로 추앙받던 무치오 클레멘티가 운영하는 피아노 제작소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하여 그곳에서 피아노 구입자들에게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일의 대가는 클레멘티의 레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17세인 1799년에는 자신의 첫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그 후 스승인 클레멘티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습니다.

 

첫 기착지인 파리에서 바흐의 푸가와 헨델의 작품을 연주하여 호평을 받고 최초의 소나타집을 출판하게 됩니다. 이후 빈에서 루트비히 베토벤의 스승이던 요한 게오르크 알브레히츠 베르거의 가르침 제의를 거부하고 28세의 나이에 자기의 제자 중 한 명인 '아델라이데'를 아내로 맞아들이며 1812년에는 3개의 첫 소품집 <녹턴>을 발간했습니다. 야상곡이라는 서정미 넘치는 피아노 양식을 만들어냈던 필드는 작곡뿐만 아니라 뛰어난 교육가로도 당시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친 저명한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앞서 말한 쇼팽뿐만 아니라 슈만, 브람스, 리스트 등 19세기에 활동한 여러 작곡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이후 러시아로 이주해서는 러시아 음악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됩니다. 녹턴은 '야상곡'이라고도 불리며 밤에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뜻을 가진 단악장의 피아노 소품을 일컫습니다. 이탈리아어로 'Notturno'란 말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으나 이 말은 세레나데의 일종으로 녹턴과는 그다지 상관없습니다. 존 필드의 녹턴은 총 18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8, 9번은 'Romances'란 이름이 붙었다가 후에 녹턴으로 바뀌었고 16, 18번은 원래는 녹턴으로 작곡한 곡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편입된 곡입니다.

 

 

 

존 필드의 녹턴은 쇼팽의 녹턴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쇼팽의 야상곡이 서정적이며 넘치는 열정의 선율로 흘러간다면 존 필드의 그것은 비교적 부드럽고 감상적이며 잔잔한 선율을 들려줍니다. 무엇보다 존 필드만의 야상곡이 지니는 독보적 아름다움은 왼손은 분산 화음을 펼치고 오른손으로는 노래하듯 멜로디 라인이 전개되는 아름답고도 간결한 피아노 연주곡이라는 점입니다. 그 뒤 10년 동안 <판타지아>등 다른 야상곡과 소나타, 몇몇 실내악곡 등을 작곡했으며 1820년 이후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존 필드 말년에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하고 종국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버려 모스크바 거리에선 '술 취한 존'으로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의 나이 55세에 병마에 시달리다 결국 눈을 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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