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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 이야기

피아노 교본의 작곡가 카를 체르니(1791~1857)

by 어니스트-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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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며 음악교육가인 카를 체르니는 리스트, 레셰티츠키 등의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연습곡 형태의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오늘날에도 중요한 초보적 연습곡으로 쓰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피아노 교본의 작곡가인 카를 체르니의 음악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피아노'하면 세계인들은 먼저 이 단어를 떠올립니다. '체르니 몇번?' 체르니 하면 먼저 생각날 수 있는 곡들은 당연히 체르니 100번부터 30, 40번 그리고 무척이나 까다롭고 어려운 체르니 50번 등 연습곡들입니다. 바로 그 체르니 교본의 주인공이자 모든 피아니스트의 스승인 카를 체르니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며 음악교육가입니다. 페르니는 빈에서 태어난 후 처음에 보헤미아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곧 두각을 나타내어 루트비하 판 베토벤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스승인 베토벤을 처음 봤을 때 그는 베토벤의 과묵한 성격과 얼굴에 질려 울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신세 진 귀족들의 자제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곤 했는데 맘에 들지 않으면 30cm 자로 손등을 내려치기도 했는데 그나마 유달리 친절히 대해 준 제자가 바로 체르니였습니다. 체르니는 뛰어난 실력이 있었지만 너무 내성적인 성격이라 연주회를 거의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체르니는 10세 때 이미 베토벤의 제자가 될 만큼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신동이었습니다. 또한 베토벤의 피아노를 해석해 내는 데 있어서 당시 가장 우수한 곡 해석력을 지닌 실력파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한마디로 피아노에 관한 한 이론과 실전에 두루 뛰어난 예술 천재라 할만합니다. 또한 체르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당시 최고의 피아노 시인인 리스트를 제자로 둘 만큼 피아노 교육자로도 널리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피아노 교육자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작곡가로서 많은 연습곡들을 작곡하였습니다. 이러한 곡들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체르니 피아노 교본들입니다. 1800년 첫 연주회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1812년 스승 베토벤의 <황제>를 대신 연주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이라는 제목을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베토벤의 제자는 여러 명이 있으나 체르니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지거나 그 이름이 음악사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그나츠 모셸레스나 브루노 하모 같은 다른 제자는 베토벤 위인전이나 일대기에서나 소개되는 엑스트라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모셸레스는 어린 멘델스존을 가르치기도 하고 쇼팽을 알리고자 노력하면서 종종 멘델스존이나 쇼팽 관련 책자에서도 언급됩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체르니는 음반이 남아 있지 않아 문헌을 통해서나 그 진가를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문헌에는 그가 교육자로서 리스트나 탈베르크의 스승이라는 점이 기록에 남아 있어 교육자로서의 그의 업적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체르니 몇 번 하는 연습곡집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지만 소나타를 위시한 피아노 소품들과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서곡과 실내악곡, 오르간 음악 그리고 미사곡과 레퀴엠 등 교회 음악까지 두루 작곡했습니다. 다작으로, 작품 번호가 861에 달하고 출판되지 않은 작품도 상당하지만 거의 다 묻혔습니다. 그 후로는 주로 피아노 연주자보다는 피아노 교사로 이름을 알렸으며 프란트 리스트도 그의 유명한 제자 중 하나입니다.

 

체르니의 작곡가로서의 업적은 피아노 3중주와 피아노 4 중주곡들이 유명합니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그가 작곡한 오르간 곡으로 서주와 푸가가 유명합니다. 물론 그는 작곡가로서 수많은 곡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의 연습곡들에 가려져 다른 곡들은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체르니의 교재를 가지고 연습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체르니는 모든 피아니스트의 영원한 스승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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