륄리는 고전 희극과 궁정 발레를 결합시킨 코믹 발레를 창작했고 많은 고전적인 장대한 오페라를 발표한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대가입니다. 그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풍을 기초로 새로운 프랑스 오페라의 방향을 결정지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왕의 악사라 불리는 장 밥티스트 륄리의 음악과 삶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륄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방앗간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륄리 스스로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륄리는 어렸을 때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천민 출신인 륄리가 음악적 재능만으로 프랑스 최고 음악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처지를 백분 활용한 그의 놀라운 수완이 그를 17세기 프랑스 음악의 최고 권위자로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그의 출발은 한 발레 작곡가의 시중으로 시작됩니다. 륄리는 어렸을 때 루이 14세의 사촌동생인 몽팡시에 공주의 시종으로 프랑스에 왔지만 얼마 후 그녀의 음악가로 고용되어 6년간 일했습니다. 1646년 륄리는 공주가 프롱드 난에 가담한 죄로 귀향을 간 이후에는 파리로 가서 루이 14세의 궁정에 고용되었습니다. 이후 왕의 비호 아래 모든 정적과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프랑스 음악계에서 독점적인 권력을 쟁취했습니다.
1652년 말과 1653년 초 륄리는 무용수로서 루이 14세 에게 고용됩니다. 그는 밤의 발레를 위한 음악작품을 몇 편 작곡함으로써 왕을 크게 기쁘게 합니다. 뛰어난 가수이자 무용수이고 바이올린 주자였던 륄리는 곧 루이 14세의 눈에 띄어 1661년 왕실 작곡가 겸 왕실음악 총감독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숨겨진 음악적 재능을 마음 것 발휘하게 된 륄리는 1669년부터 오페라 상영권을 독점하고 왕립 음악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아마디스>, <아르미드>등 장대한 오페라를 발표합니다.
륄리는 루이 14세와 그 자신이 춤을 추던 1650년대와 60년대에 왕을 위한 많은 수의 발레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몰리에르의 희극을 위한 음악 <강제 결혼>, <사랑의 의사>, <서민 귀족>을 작곡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점차 나이가 들게 되고 춤 실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발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륄리는 오페라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륄리는 장 바티스트 콜베르와 왕의 후원으로 피에르 페랭이 오페라에서 누리던 특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륄리는 양성애자와 난봉꾼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1662년 그는 륄리의 친구이자 동료 음악가인 미셀 랭베르의 딸 마델레인 랭베르와 결혼했으며 아내와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륄리는 자신의 지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의 시종인 브루넷과의 관계를 과시하는 게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추문에도 불구하고 륄리는 항상 루이 14세의 위엄을 회복하도록 조율하였습니다. 왕은 륄리를 자신의 음악적 여흥에 필수적인 사람이자 그의 몇 안 되는 진정한 친구 중 한 명으로 생각했습니다.
1681년 륄리는 루이 14세를 위한 궁정 비서로 임명되면서 귀족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륄리는 자신의 이름을 장 바티스트 데 륄리라고 적었고 그 후로 '륄리 경'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687년 1월 8일 륄리는 루이 14세가 중병에서 쾌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테 데움>이 자신의 생명을 재촉했습니다. 륄리는 가수와 음악가 150명을 고용해 자비로 보수를 지급할 만큼 공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륄리는 당시 지휘 관습대로 리허설 도중에 긴 막대기를 바닥에 내리치면서 박자를 맞추다가 그만 자기 발끝을 내리찍고 말았습니다. 그 상처는 회저병으로 퍼지면서 결국 3월 22일 륄리는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륄리는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폴릭 세네와 아킬레스>를 미완성으로 남겼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진 병상에서 륄리는 "너는 죽어야 한다, 죄인이여"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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